■ 기사 타이틀 : "먼저 떠난 아들 편지 읽고 싶어… 야학서 한글 배웠죠"
■ 기사 일시 : 2019.07.25 03:00
■ 기사 내용
서울 야학 17곳으로 줄었지만 어르신들 배움의 열기 뜨거워중졸 검정고시 준비하는 68세 "연필로 허벅지 찔러가며 수업"
"자식 같은 선생님들이 '○○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을 불러줍니다. 학생 대접 받으니 소녀가 된 것 같아요."
22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대신야학'에서 만난 민양순(68)씨의 오른쪽 허벅지엔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다. 민씨는 "수업 중 졸음을 이기려고 연필로 자꾸 찌르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여섯 살 때 모친(母親)을 여의고 초등학교를 1학년 때 그만둔 뒤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서른일곱 살 때 남편이 연탄가스 사고로 세상을 뜨자 도배 기술자로 일하며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홀로 키웠다. 민씨는 지난해 4월 딸 권유로 대신야학에 입학했다. 올해 4월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지금은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야학(夜學)은 일제강점기에 민족 계몽을 주도했고, 1970~80년대에는 빈민층·노동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2006년 서울에 36곳이었던 야학은 현재 17곳까지 줄었다.
그러나 야학당 내 배움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이날 대신야학당 2층 '등불교실'에선 중졸 검정고시반 재학생 4명이 수학 문제를 놓고 씨름 중이었다. 학생들은 "틀리면 선생님이 힘 빠지니 꼭 맞혀야 한다"며 풀이 방법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바로 위층 '화반교실'에선 초졸 검정고시반 학생 8명이 도화지에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과 '접동새' 등을 필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시(詩)를 썼고, 시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1981년 교회 다락방 한편에 문을 연 이 야학은 지난 38년 동안 1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는 두 반에 38명이 재학 중이다.
야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검정고시 응시와 합격이 목표다.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은 "배울 때를 놓쳤으면서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고, 사설 학원 강의 속도는 따라가기 힘든 어르신들이 주로 야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학생 김순례(61)씨는 "여태껏 공부 안 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워 야학을 찾았다"고 했다. 평생을 미혼모로 살았다는 김영희(가명·72)씨는 20여 년 전 숨진 아들이 쓴 편지를 읽고 싶어 야학에 등록했다. 김씨 아들은 입대하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글을 배워 아들의 편지를 소리 내 읽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야학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다. 과거엔 검정고시 합격만을 위한 '공부방' 성격이 짙었지만, 최근에는 학창 시절 재현(再現)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 중랑구 묵동 '태청야학'의 정윤이 연구부장은 "공부 외에도 학창 시절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야학에선 매년 9월 학생 전원이 교복을 빌려 입고 1박 2일 경주나 제주도 등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영화와 공연 관람, 체육대회, 졸업 여행 등 각종 친목 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진다.
야학의 저력은 자원봉사자에게서 나온다. 대부분 본업이 따로 있는 20~30대 직장인이다. 구청 등 지자체와 협의해 후원을 끌어내고, 홍보를 통해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2012년부터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장지훈(28)씨는 "이곳 학생 대부분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하루 4시간을 자지 않는다. 그 열의에서 내가 더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대신야학에선 6개월마다 교사를 6명씩 뽑는데 올해 상반기엔 15명이 지원해 경쟁률 2대1이 넘었다. 태청야학엔 자원봉사하고 싶다는 인근 고려대 학생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야학을 찾는 다문화 가족도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다산야학'은 2015년부터 다문화 한국어반 두 학급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30여 학생의 출신국은 중국,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으로 다양하다. 매주 2회 한국사와 국어 위주로 수업한다. 서울 중구 황학동 '신당야학'은 스마트폰·소셜미디어 활용법 같은 특강을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기사 원문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5/201907250022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 기사 타이틀 : "먼저 떠난 아들 편지 읽고 싶어… 야학서 한글 배웠죠"
■ 기사 일시 : 2019.07.25 03:00
■ 기사 내용
서울 야학 17곳으로 줄었지만 어르신들 배움의 열기 뜨거워중졸 검정고시 준비하는 68세 "연필로 허벅지 찔러가며 수업"
"자식 같은 선생님들이 '○○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을 불러줍니다. 학생 대접 받으니 소녀가 된 것 같아요."
22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대신야학'에서 만난 민양순(68)씨의 오른쪽 허벅지엔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다. 민씨는 "수업 중 졸음을 이기려고 연필로 자꾸 찌르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여섯 살 때 모친(母親)을 여의고 초등학교를 1학년 때 그만둔 뒤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서른일곱 살 때 남편이 연탄가스 사고로 세상을 뜨자 도배 기술자로 일하며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홀로 키웠다. 민씨는 지난해 4월 딸 권유로 대신야학에 입학했다. 올해 4월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지금은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야학(夜學)은 일제강점기에 민족 계몽을 주도했고, 1970~80년대에는 빈민층·노동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2006년 서울에 36곳이었던 야학은 현재 17곳까지 줄었다.
그러나 야학당 내 배움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이날 대신야학당 2층 '등불교실'에선 중졸 검정고시반 재학생 4명이 수학 문제를 놓고 씨름 중이었다. 학생들은 "틀리면 선생님이 힘 빠지니 꼭 맞혀야 한다"며 풀이 방법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바로 위층 '화반교실'에선 초졸 검정고시반 학생 8명이 도화지에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과 '접동새' 등을 필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시(詩)를 썼고, 시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1981년 교회 다락방 한편에 문을 연 이 야학은 지난 38년 동안 1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는 두 반에 38명이 재학 중이다.
야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검정고시 응시와 합격이 목표다.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은 "배울 때를 놓쳤으면서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고, 사설 학원 강의 속도는 따라가기 힘든 어르신들이 주로 야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학생 김순례(61)씨는 "여태껏 공부 안 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워 야학을 찾았다"고 했다. 평생을 미혼모로 살았다는 김영희(가명·72)씨는 20여 년 전 숨진 아들이 쓴 편지를 읽고 싶어 야학에 등록했다. 김씨 아들은 입대하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글을 배워 아들의 편지를 소리 내 읽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야학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다. 과거엔 검정고시 합격만을 위한 '공부방' 성격이 짙었지만, 최근에는 학창 시절 재현(再現)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 중랑구 묵동 '태청야학'의 정윤이 연구부장은 "공부 외에도 학창 시절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야학에선 매년 9월 학생 전원이 교복을 빌려 입고 1박 2일 경주나 제주도 등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영화와 공연 관람, 체육대회, 졸업 여행 등 각종 친목 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진다.
야학의 저력은 자원봉사자에게서 나온다. 대부분 본업이 따로 있는 20~30대 직장인이다. 구청 등 지자체와 협의해 후원을 끌어내고, 홍보를 통해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2012년부터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장지훈(28)씨는 "이곳 학생 대부분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하루 4시간을 자지 않는다. 그 열의에서 내가 더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대신야학에선 6개월마다 교사를 6명씩 뽑는데 올해 상반기엔 15명이 지원해 경쟁률 2대1이 넘었다. 태청야학엔 자원봉사하고 싶다는 인근 고려대 학생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야학을 찾는 다문화 가족도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다산야학'은 2015년부터 다문화 한국어반 두 학급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30여 학생의 출신국은 중국,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으로 다양하다. 매주 2회 한국사와 국어 위주로 수업한다. 서울 중구 황학동 '신당야학'은 스마트폰·소셜미디어 활용법 같은 특강을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기사 원문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5/201907250022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