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타이틀 : "배운거 잊을까 애간장"…코로나도 못막은 만학도 열정
■ 기사 일시 : 2021-03-28 10:01:00
■ 기사 내용
늦깎이 배움의 꿈 키우는 만학도들코로나 휴강으로 공부 못해 큰 상심"우울증 걸릴 것 같아" 호소하기도꼼꼼한 방역 전제로 학교 운영 재개방역교사 두고 학생들도 서로 주의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한 문제 더 풀어볼까요?""한 번 더! 몰라도 밀고 나가야지."
지난 25일 저녁 8시가 가까워진 시간. 서울 중랑구 묵동의 한 학교 교실에서 유쾌한 대화가 오갔다. 약속이나 한 듯 곱슬머리에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중·노년 여성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민간교육기관인 태청야학의 풍경이다.이 곳은 어렸을 적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 한글을 배우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늦깎이 학생 대다수가 과거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온 60~70대 여성이다. 이들은 평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글자를 익히며 배움의 결핍을 조금씩 채워나간다.학교에서 만난 최예순(67) 학생회장은 초등학교 입학은 했지만 1학기를 채 못 다녔다고 한다. 가난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최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최 회장은 "가난해서 연필 하나 살 돈이 없었지. 신발이 찢어지면 맨발로 학교 가고 하니까 창피해서 나중엔 안 갔어"라며 떠올렸다.학생들은 뒤늦게나마 공부를 하며 '못 배운 설움'을 털어냈다. 초등 저학년 과정을 밟고 있는 조모씨는 "옛날엔 (한글을 몰라) 은행 가서 돈 찾는 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쓱쓱 써서 찾으니까 너무 좋은 거지"라며 웃었다.같은 반 학생 현모씨도 기자 앞에서 자랑에 나섰다."어디 나가면 간판을 볼 수가 있잖아. 전에는 몰라서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그랬는데…"
지난해 배움의 꿈에 한껏 부풀어있는 학생들을 좌절케 한 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었다. 전염력과 치명율이 높은 병에 고위험군인 고령자들이 많은 야학은 속수무책이었다.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확진자 수가 크게 줄면 잠시 개강을 하기도 했지만 확산세가 꺾일 줄 모르며 학교는 거의 '멈춤' 상태였다.휴강 결정으로 만학도들의 상심은 컸다.한글을 뗀 지 얼마 안 됐다는 유모씨는 "한 자라도 배워서 좋았는데 집에 있으려니 애가 탔어"라고 했다. 조모씨도 "그동안 배운 것 잊어 먹을까봐 신경 쓰였지. 아이들 같으면 금방 다시 배우지만 우리는 아니잖아?"라며 휴강 시기 초조했던 심정을 전했다.검정고시를 앞둔 학생들도 불안해했다. 학생들은 연신 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다시 여냐"고 물어봤다.고령에 혼자서 시험 준비를 한다는 건 무리였다. 지난해 8월 시험을 앞두고 급하게 교사들의 지도를 받았지만 실력 발휘가 어려웠다.최 회장은 "작년에 시험 본 것 답을 맞춰보니까 아는 것도 다 틀린 거야. 사회 하나만 60점 턱걸이로 통과했어"라고 말했다.외부와의 교류가 끊기는 것도 고령인 학생들에겐 문제였다. 정서적 위기에 처한 학생들은 전화로 선생님들을 찾았다.야학 경력 14년 차인 정윤이(36) 연구부장은 "학생들이 처음엔 '공부 못해서 심심하고 까먹을까봐 불안하다'고 하더니 나중엔 점점 '선생님, 나 우울증 걸릴 것 같다, 집에만 갇혀서 힘들다' 이렇게 말했다"며 "상황이 위험한 것을 알지만 우리마저 손을 떼면 그분들이 정말 고립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학생들의 고충을 외면할 수 없었던 교사들은 이달 8일부터 수업을 재개했다.학교에 온 학생들의 얼굴엔 활기가 띠었다. 최 회장은 "코로나 때문에 산악회도 못가고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있었는데 여기 오면 숨이 트이는 것 같아, 코로나가 빨리 없어져서 다른 사람들도 다 와서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어"라고 전했다.
야학은 여러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학교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5개 반을 2개로 축소 운영하고 있다. 교실 내에서도 거리두기는 필수다. 이날 수업이 있던 2개 교실 모두 학생들은 짝을 짓지 않고 최대한 간격을 두고 앉았다.방역전담인력도 뒀다. 이날 김남일(27) 방역담당교사는 수업 1시간 전 학교에 도착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열을 체크하고 출입명부 작성을 안내했다. 수업이 끝난 9시엔 소독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책상 등 교실 곳곳을 마른 걸레로 닦아냈다.김 교사는 "할머니들이 수업 열심히 들으러 나오셨는데 아프시면 안 되니까 꼼꼼히 방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방역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찍 등교해 숙제를 하고 있던 최 회장은 옆 반 학생 박모씨가 열 체크 후 곧장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언니 손소독제 챙겨"라며 주의를 줬다.학생 김모씨는 등교 후 교실에 들어가면서 방역담당교사에게 "여기 책상 다 닦았죠?"라며 소독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앞으로의 운영 계획에 대해 박승일(65) 교장은 "코로나19 상황엔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확진자 수와 사회 분위기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정 연구부장은 "여러 가지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지속시켜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기사 원문 :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326_0001384680&cID=10201&pID=10200
■ 기사 타이틀 : "배운거 잊을까 애간장"…코로나도 못막은 만학도 열정
■ 기사 일시 : 2021-03-28 10:01:00
■ 기사 내용
늦깎이 배움의 꿈 키우는 만학도들코로나 휴강으로 공부 못해 큰 상심"우울증 걸릴 것 같아" 호소하기도꼼꼼한 방역 전제로 학교 운영 재개방역교사 두고 학생들도 서로 주의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한 문제 더 풀어볼까요?""한 번 더! 몰라도 밀고 나가야지."
지난 25일 저녁 8시가 가까워진 시간. 서울 중랑구 묵동의 한 학교 교실에서 유쾌한 대화가 오갔다. 약속이나 한 듯 곱슬머리에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중·노년 여성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민간교육기관인 태청야학의 풍경이다.이 곳은 어렸을 적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 한글을 배우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늦깎이 학생 대다수가 과거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온 60~70대 여성이다. 이들은 평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글자를 익히며 배움의 결핍을 조금씩 채워나간다.학교에서 만난 최예순(67) 학생회장은 초등학교 입학은 했지만 1학기를 채 못 다녔다고 한다. 가난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최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최 회장은 "가난해서 연필 하나 살 돈이 없었지. 신발이 찢어지면 맨발로 학교 가고 하니까 창피해서 나중엔 안 갔어"라며 떠올렸다.학생들은 뒤늦게나마 공부를 하며 '못 배운 설움'을 털어냈다. 초등 저학년 과정을 밟고 있는 조모씨는 "옛날엔 (한글을 몰라) 은행 가서 돈 찾는 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쓱쓱 써서 찾으니까 너무 좋은 거지"라며 웃었다.같은 반 학생 현모씨도 기자 앞에서 자랑에 나섰다."어디 나가면 간판을 볼 수가 있잖아. 전에는 몰라서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그랬는데…"
지난해 배움의 꿈에 한껏 부풀어있는 학생들을 좌절케 한 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었다. 전염력과 치명율이 높은 병에 고위험군인 고령자들이 많은 야학은 속수무책이었다.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확진자 수가 크게 줄면 잠시 개강을 하기도 했지만 확산세가 꺾일 줄 모르며 학교는 거의 '멈춤' 상태였다.휴강 결정으로 만학도들의 상심은 컸다.한글을 뗀 지 얼마 안 됐다는 유모씨는 "한 자라도 배워서 좋았는데 집에 있으려니 애가 탔어"라고 했다. 조모씨도 "그동안 배운 것 잊어 먹을까봐 신경 쓰였지. 아이들 같으면 금방 다시 배우지만 우리는 아니잖아?"라며 휴강 시기 초조했던 심정을 전했다.검정고시를 앞둔 학생들도 불안해했다. 학생들은 연신 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다시 여냐"고 물어봤다.고령에 혼자서 시험 준비를 한다는 건 무리였다. 지난해 8월 시험을 앞두고 급하게 교사들의 지도를 받았지만 실력 발휘가 어려웠다.최 회장은 "작년에 시험 본 것 답을 맞춰보니까 아는 것도 다 틀린 거야. 사회 하나만 60점 턱걸이로 통과했어"라고 말했다.외부와의 교류가 끊기는 것도 고령인 학생들에겐 문제였다. 정서적 위기에 처한 학생들은 전화로 선생님들을 찾았다.야학 경력 14년 차인 정윤이(36) 연구부장은 "학생들이 처음엔 '공부 못해서 심심하고 까먹을까봐 불안하다'고 하더니 나중엔 점점 '선생님, 나 우울증 걸릴 것 같다, 집에만 갇혀서 힘들다' 이렇게 말했다"며 "상황이 위험한 것을 알지만 우리마저 손을 떼면 그분들이 정말 고립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학생들의 고충을 외면할 수 없었던 교사들은 이달 8일부터 수업을 재개했다.학교에 온 학생들의 얼굴엔 활기가 띠었다. 최 회장은 "코로나 때문에 산악회도 못가고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있었는데 여기 오면 숨이 트이는 것 같아, 코로나가 빨리 없어져서 다른 사람들도 다 와서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어"라고 전했다.
야학은 여러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학교 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5개 반을 2개로 축소 운영하고 있다. 교실 내에서도 거리두기는 필수다. 이날 수업이 있던 2개 교실 모두 학생들은 짝을 짓지 않고 최대한 간격을 두고 앉았다.방역전담인력도 뒀다. 이날 김남일(27) 방역담당교사는 수업 1시간 전 학교에 도착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열을 체크하고 출입명부 작성을 안내했다. 수업이 끝난 9시엔 소독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책상 등 교실 곳곳을 마른 걸레로 닦아냈다.김 교사는 "할머니들이 수업 열심히 들으러 나오셨는데 아프시면 안 되니까 꼼꼼히 방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방역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찍 등교해 숙제를 하고 있던 최 회장은 옆 반 학생 박모씨가 열 체크 후 곧장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언니 손소독제 챙겨"라며 주의를 줬다.학생 김모씨는 등교 후 교실에 들어가면서 방역담당교사에게 "여기 책상 다 닦았죠?"라며 소독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앞으로의 운영 계획에 대해 박승일(65) 교장은 "코로나19 상황엔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확진자 수와 사회 분위기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정 연구부장은 "여러 가지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지속시켜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기사 원문 :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326_0001384680&cID=10201&pID=10200